롱비치 Long Beach | |||
시장 (市章) | |||
시기 (市旗) | 로고 | ||
WHERE THE SUN RISES FIRST | |||
국가 | |||
지위 | 루이나의 시 | ||
시청 소재지 | 시빅센터 플라자 1, 롱비치 30001 | ||
면적 | 전체 | 1,284.62km² | |
육지 | 1,032.87km² | ||
하위 행정구역 | 8구 | ||
인구[1] | 6,412,560명 (2023) | ||
인구밀도 | 6,208명/km² (2023) | ||
광역권 인구[2] | 9,870,000명 (2023) | ||
기후 | |||
1인당 평균 소득[3] | $59,630 (2022) [4] | ||
GDP | 도시 | $8,650억 (2023) | |
광역 | $1조 2,400억 (2023) | ||
시장 | |||
시의회 (41석) | 26석 | ||
15석 | |||
상원의원 (8석) | 5석 | ||
3석 | |||
하원의원 (32석) | 20석 | ||
10석 | |||
2석 | |||
지역번호 | 041, 044 | ||
1. 개요 [편집]
롱비치(Long Beach)는 루이나 남동부 해안에 있는 항구도시다. 2023년 기준 인구는 약 641만 명으로, 남동부에서 가장 큰 도시다. 이름처럼 동쪽 바다를 따라 긴 해안선이 이어져 있어, 루이나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대도시로 불린다.
롱비치는 항만과 영화라는 두 개의 축으로 움직이는 도시다. 해안을 따라 대형 상업항과 해군 제4함대 본부가 있는 롱비치 해군기지가 자리 잡고 있으며, 북쪽 언덕의 오로라 힐스에는 루이나의 주요 영화사와 촬영소가 모여 있어 루이나 영화 산업의 중심지로 꼽힌다. 오래된 석조 건물이 많은 구도심과 해안가의 단독주택 지구가 어우러진 경관은 아파트 단지가 흔한 다른 루이나 도시들과 대비된다.
롱비치는 건국 초부터 루이나 정치의 한 축이었다. 1885년 공화국 수립 당시 인구가 많은 시를 대표해 의석을 인구에 비례해 나누자는 '롱비치 플랜'을 내세웠고, 이것이 작은 시들의 요구와 절충되어 지금의 양원제 의회를 낳은 벨포르 타협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롱비치의 이름을 루이나 현대사에 가장 깊이 새긴 것은 1979년 말 군정의 계엄군이 시민들을 학살한 12.23 민주화운동이다. 이 사건은 이듬해 10.24 시민혁명으로 이어지는 저항의 도화선이 되었다.
2000년대 이후 항만 산업의 정체와 부패로 침체를 겪던 롱비치는, 2016년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루스탈지아 그래이 시장의 개혁으로 다시 주목받았다. 그래이는 이후 대통령이 되었으며, 그녀의 고향이자 정치적 출발점이라는 점도 오늘날 롱비치를 상징하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롱비치는 항만과 영화라는 두 개의 축으로 움직이는 도시다. 해안을 따라 대형 상업항과 해군 제4함대 본부가 있는 롱비치 해군기지가 자리 잡고 있으며, 북쪽 언덕의 오로라 힐스에는 루이나의 주요 영화사와 촬영소가 모여 있어 루이나 영화 산업의 중심지로 꼽힌다. 오래된 석조 건물이 많은 구도심과 해안가의 단독주택 지구가 어우러진 경관은 아파트 단지가 흔한 다른 루이나 도시들과 대비된다.
롱비치는 건국 초부터 루이나 정치의 한 축이었다. 1885년 공화국 수립 당시 인구가 많은 시를 대표해 의석을 인구에 비례해 나누자는 '롱비치 플랜'을 내세웠고, 이것이 작은 시들의 요구와 절충되어 지금의 양원제 의회를 낳은 벨포르 타협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롱비치의 이름을 루이나 현대사에 가장 깊이 새긴 것은 1979년 말 군정의 계엄군이 시민들을 학살한 12.23 민주화운동이다. 이 사건은 이듬해 10.24 시민혁명으로 이어지는 저항의 도화선이 되었다.
2000년대 이후 항만 산업의 정체와 부패로 침체를 겪던 롱비치는, 2016년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루스탈지아 그래이 시장의 개혁으로 다시 주목받았다. 그래이는 이후 대통령이 되었으며, 그녀의 고향이자 정치적 출발점이라는 점도 오늘날 롱비치를 상징하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2. 상징 [편집]
2.1. 휘장 [편집]
롱비치의 휘장(市章)은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와 그 아래의 닻을 그린 형태다. 해는 루이나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도시라는 자부심을, 닻은 도시의 뿌리인 항구를 나타낸다. 해에서 뻗어 나오는 열두 줄기의 빛은 1885년 공화국을 함께 세운 12개 시를 뜻한다.
2.2. 시기 [편집]
시기(市旗)는 롱비치의 상징색인 청록색(#0b6e99) 바탕 가운데에 흰색 휘장을 놓은 형태다. 청록색은 롱비치 앞바다를 뜻한다.
2.3. 브랜드·슬로건 [편집]
롱비치의 도시 브랜드는 'WHERE THE SUN RISES FIRST'(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다. 루이나 대도시 가운데 가장 동쪽에 있어 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지리적 특징과, 루이나의 새로운 흐름이 늘 롱비치에서 먼저 시작된다는 뜻을 함께 담았다. 영화사의 오프닝 로고에도 롱비치의 해돋이가 자주 쓰여, 루이나 사람들에게 이 문구는 영화의 시작과도 연결된다.
2.4. 시정 슬로건 [편집]
시장 | 재임 | 시정 슬로건 |
루스탈지아 그래이 | 2016~2021 | 시민 중심 행정 |
클레어 D. 뒤프레 | 2021~ | 다시 뜨는 롱비치 |
2.5. 마스코트 [편집]
롱비치의 마스코트는 갈매기 '써니'(Sunny)다. 머리에 해 모양의 깃털을 달고 영화 촬영용 슬레이트를 든 모습으로, 항구와 해돋이, 영화라는 롱비치의 상징을 한데 모았다. 2010년 롱비치 국제영화제 개막에 맞춰 처음 선보였다.
2.6. 홍보대사 [편집]
롱비치시는 해마다 롱비치에서 활동하는 영화인을 홍보대사로 위촉한다. 2024년에는 롱비치 출신 배우 엘레나 M. 로시와 롱비치 시각예술대학 출신의 촬영감독 토마 J. 르브룅이 위촉되었다.
3. 외국어 표기 [편집]
언어 | 표기 |
루이나어 (로마자) | Lonbich |
루이나어 (키릴 문자) | Лонбич |
영어 | Long Beach |
러시아어 | Лонг-Бич |
프랑스어 | Longue-Plage |
중국어 | 长滩 |
일본어 | ロングビーチ |
한국어 | 롱비치 |
롱비치라는 이름은 루이나어가 아니라 영어 지명이 그대로 굳은 것이다. 이 때문에 루이나어로는 영어 발음을 옮긴 Lonbich로 적지만, 공식 문서와 국제적으로는 영어 표기 Long Beach가 훨씬 널리 쓰인다.
4. 역사 [편집]
롱비치 일대는 중세까지 동해안의 작은 어촌들이 흩어진 곳이었다. 근세에 들어 동쪽 바다로 나가는 항로가 열리면서 항구가 커졌고, 17~18세기 영국 상인들이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해안을 따라 이어진 긴 모래사장을 '롱 비치'라고 부르면서 지금의 이름이 굳었다. 19세기에는 조선소와 창고가 들어서며 동해안 최대의 항구로 자랐다.
1885년 공화국 수립 당시 롱비치는 벨포르와 함께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헌법제정회의에서 롱비치는 인구가 많은 시를 대표해 '롱비치 플랜'을 내세웠고, 작은 시를 대표한 크레테와 맞서다 벨포르 타협으로 절충했다. 이 타협으로 하원은 인구에 비례해, 상원은 시마다 같은 수로 뽑는 지금의 의회가 만들어졌다.
20세기 초 롱비치는 영화의 도시가 되었다. 1910년대 맑은 날이 많고 바다와 언덕, 구도심을 한꺼번에 찍을 수 있는 롱비치에 촬영소가 하나둘 들어섰고, 1930년대에는 오로라 힐스에 대형 영화사들이 자리를 잡았다. 1941년에는 롱비치 경찰국이 창설되었다.
검은 10년 동안 롱비치는 조직범죄와 정치 폭력에 시달렸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롱비치의 사보이아 조직은 올덴버그 마피아와 항만의 하역권을 두고 항만 전쟁을 벌였고, 롱비치 항만 창고 습격 같은 무장 공격도 잇따랐다. 1982년 4월에는 혁명적 노동자동맹(RWL)의 총책 알랭 R. 도르망이 롱비치에서 검거되었다.
1979년 12월 23일부터 1980년 1월 1일까지 롱비치에서는 12.23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군정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를 계엄군이 무력으로 진압하자 시민들이 시민군을 꾸려 맞섰으나, 계엄군은 시를 다시 장악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민을 학살했다. 군정은 이 사건을 '롱비치 폭동'이라 불렀지만, 롱비치에서 흘린 피는 이듬해 10.24 시민혁명으로 군정을 무너뜨린 저항의 원동력이 되었다.
1990년대 이후 롱비치는 항만과 영화 산업을 바탕으로 성장했지만, 2000년대 들어 항만 물동량이 정체하면서 침체에 빠졌다. 2008년부터 8년 동안 민주공화당 시장이 연임하는 사이 부패와 청년 실업이 쌓였고, 2016년 선거에서 무소속의 루스탈지아 그래이가 60.2%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그래이는 2019년 재선된 뒤 2021년 대통령 선거에 나서며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2022년에는 롱비치 광장 야시장에서 극우 성향 청년 2명이 이민자들을 겨냥해 총기를 난사해 7명이 숨지는 혐오 범죄가 일어났다.
4.1. 지명의 어원 [편집]
'롱비치'는 영어로 '긴 해변'이라는 뜻이다. 17~18세기 이곳을 드나들던 영국 상인과 선원들이 해안을 따라 수십 km에 걸쳐 이어진 모래사장을 부르던 이름이 그대로 도시 이름이 되었다. 그 이전 이 일대의 어촌들은 각자 루이나어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항구가 커지면서 영어 이름이 지역 전체를 가리키게 되었다. 루이나의 대도시 가운데 영어 지명을 쓰는 곳은 롱비치가 거의 유일하다.
4.2. 지명 변천사 [편집]
시기 | 이름 |
중세 | 동해안 어촌들 |
17세기~ | 롱비치 (Long Beach) |
1885년~ | 롱비치 시 |
4.3. 『루이나 왕국 지리지』에서의 설명 [편집]
왕도에서 동남쪽으로 엿새 길에 긴 모래사장이 있다. 바닷가를 따라 고기 잡는 마을이 아홉 있는데, 가구는 모두 1,120호, 사람은 5,480명이다. 동쪽 바다로 해가 뜨는 것이 나라 안에서 가장 이르다. 근래 바다 건너에서 오는 배가 이곳에 머물며 물을 긷는다. 토산물은 김과 소금, 말린 생선이다.『루이나 왕국 지리지』 제3권 「동해안」
1543년 완성된 『루이나 왕국 지리지』에는 아직 '롱비치'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동해안의 어촌 아홉 곳을 묶어 기록하면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이라는 설명과 함께 바다 건너에서 온 배들이 들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적고 있다. 오늘날의 도시 브랜드와 항구도시의 출발을 모두 보여 주는 기록이라, 롱비치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된다.
5. 지리 [편집]
롱비치는 루이나 남동부의 동해안에 있다. 해안을 따라 긴 모래사장과 만이 이어지고, 북쪽과 서쪽으로는 완만한 언덕이 도시를 감싼다. 바다와 언덕 사이의 좁고 긴 평지에 구도심과 항구가 자리 잡았으며, 도시가 커지면서 시가지는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나갔다.
5.1. 롱비치의 구 [편집]
롱비치는 8개 구로 나뉜다.
구 | 인구 (2023) | 면적 | 인구밀도 |
다운타운 | 612,430명 | 41.26km² | 14,843명/km² |
하버 | 538,214명 | 98.53km² | 5,462명/km² |
포인트 레이 | 402,118명 | 76.40km² | 5,263명/km² |
오로라 힐스 | 948,762명 | 142.85km² | 6,642명/km² |
선라이즈 비치 | 1,021,507명 | 154.62km² | 6,607명/km² |
벨뷰 | 687,335명 | 118.27km² | 5,812명/km² |
노스게이트 | 1,486,920명 | 196.31km² | 7,574명/km² |
솔트베이 | 715,274명 | 204.63km² | 3,495명/km² |
합계 | 6,412,560명 | 1,032.87km² | 6,208명/km² |
다운타운은 시청이 있는 시빅센터 플라자 일대의 구도심이다. 19세기에 지어진 석조 건물이 많이 남아 있으며, 1979년 12.23 민주화운동 때 시민군과 계엄군이 맞선 주무대였다.
하버는 롱비치항의 부두와 컨테이너 터미널, 조선소가 있는 항만 지역이다.
포인트 레이는 해안으로 튀어나온 곶에 자리한 구로, 루이나 해군 제4함대 본부와 롱비치 해군기지가 있다.
오로라 힐스는 북쪽 언덕의 구로, 루이나의 주요 영화사와 촬영소가 모여 있는 영화 산업의 중심지다.
선라이즈 비치는 동쪽 해안의 긴 모래사장을 따라 이어진 구로, 해변과 단독주택 지구가 어우러진 롱비치의 대표 경관이다.
벨뷰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고급 주택가로, 영화인과 기업가가 많이 산다.
노스게이트는 인구가 가장 많은 구로, 항만과 공장 노동자들이 사는 주거 지역이다.
솔트베이는 남쪽 해안의 구로, 옛 어촌과 김·파래 양식장, 염전이 남아 있다.
5.1.1. 행정구역 변천사 [편집]
1885년 롱비치 시가 생겼을 때는 다운타운과 하버, 노스게이트를 비롯한 5개 구였다. 1930년대 영화사들이 자리 잡은 북쪽 언덕을 오로라 힐스 구로 떼어 냈고, 1950년대 해안을 따라 시가지가 넓어지면서 선라이즈 비치와 솔트베이, 해군기지가 있는 포인트 레이가 차례로 독립된 구가 되어 지금의 8구 체제가 되었다.
5.2. 인구 [편집]
2023년 기준 롱비치의 인구는 6,412,560명으로, 루이나 인구의 약 7%다.
연도 | 인구 |
1885년 | 1,050,000명 |
1900년 | 1,480,000명 |
1920년 | 2,310,000명 |
1940년 | 3,420,000명 |
1960년 | 4,880,000명 |
1980년 | 5,760,000명 |
2000년 | 6,190,000명 |
2010년 | 6,520,000명 |
2020년 | 6,440,000명 |
2023년 | 6,412,560명 |
롱비치의 인구는 2010년 무렵 가장 많았다가, 항만 산업의 정체로 일자리가 줄면서 조금씩 줄고 있다. 항구도시답게 일찍부터 외국 상인과 선원, 이민자가 정착했으며, 지금도 시민의 4분의 1가량이 외국에서 태어났다.
5.3. 기후 [편집]
롱비치는 온난 습윤 기후(Cfa)에 속한다. 바다의 영향을 크게 받아 해풍과 안개가 잦으며, 여름 기온이 높은 날에도 바닷바람 덕분에 체감 더위는 내륙보다 덜하다. 봄에는 바다와 육지의 온도 차 때문에 아침 안개가 자주 낀다. 겨울은 루이나의 다른 대도시보다 온화하고 눈이 적다.
6. 위상 [편집]
롱비치는 루이나 남동부의 중심 도시이자, 동쪽 바다로 열린 루이나의 관문이다. 동태평양과 남아메리카로 향하는 항로가 롱비치에서 출발하며, 이 방면을 맡는 해군 제4함대도 롱비치에 있다. 문화 면에서는 루이나 영화 산업의 중심지로, 루이나에서 만들어지는 상업 영화의 대부분이 롱비치의 촬영소에서 나온다.
정치적으로도 무게가 있는 도시다. 건국 때 롱비치 플랜으로 의회의 틀을 만들었고, 12.23 민주화운동으로 군정을 무너뜨리는 저항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현직 대통령 루스탈지아 그래이를 길러 냈다. 루이나 사람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것은 롱비치에서 먼저 시작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정치적으로도 무게가 있는 도시다. 건국 때 롱비치 플랜으로 의회의 틀을 만들었고, 12.23 민주화운동으로 군정을 무너뜨리는 저항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현직 대통령 루스탈지아 그래이를 길러 냈다. 루이나 사람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것은 롱비치에서 먼저 시작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7. 교통 [편집]
롱비치는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뻗은 도시여서,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도시철도와 트램이 주된 교통수단이다. 롱비치 중앙역에서는 벨포르로 가는 고속철도와 남동부 각지로 가는 철도가 출발한다. 하늘길은 국제선과 국내선을 함께 맡는 롱비치 국제공항이 있다. 바다에서는 롱비치항이 동태평양 항로의 거점 역할을 하며, 해안 마을과 섬을 잇는 여객선도 다닌다.
8. 경제 [편집]
롱비치 경제의 두 축은 항만과 영화다. 롱비치항은 컨테이너와 자동차, 원자재를 실어 나르는 루이나의 주요 무역항이며, 항만 주변에는 조선소와 물류단지, 해운회사가 모여 있다. 오로라 힐스의 영화 산업은 영화 제작과 배급, 촬영 장비, 특수효과, 후반 작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일자리를 만든다. 이 밖에 관광업과 솔트베이 일대의 김·파래 양식이 지역 경제를 받친다.
2000년대 이후에는 항만 물동량이 정체하면서 노동자 일자리가 크게 줄었다. 영화 산업이 성장하며 빈자리를 일부 메웠지만, 영화 산업의 일자리는 고학력·고소득층에 몰리고 항만 노동자의 일자리는 계속 줄어, 도시 안의 소득 격차가 커졌다는 지적이 많다.
2000년대 이후에는 항만 물동량이 정체하면서 노동자 일자리가 크게 줄었다. 영화 산업이 성장하며 빈자리를 일부 메웠지만, 영화 산업의 일자리는 고학력·고소득층에 몰리고 항만 노동자의 일자리는 계속 줄어, 도시 안의 소득 격차가 커졌다는 지적이 많다.
8.1. 영화 산업 [편집]
롱비치는 '루이나 영화의 수도'로 불린다. 1910년대 맑은 날씨와 다양한 풍경을 찾아온 영화인들이 촬영소를 세운 것이 시작이었고, 1930년대에는 오로라 힐스에 대형 영화사들이 자리를 잡으며 영화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1950~1960년대에는 루이나 영화의 황금기를 맞아, 오로라 힐스의 촬영소에서 해마다 수백 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1978년 군정이 들어선 뒤에는 검열이 강화되어 많은 영화인이 해외로 떠나거나 일을 그만두었다. 1980년 헌정 회복 이후 롱비치의 영화 산업은 다시 살아났고, 1990년대부터는 12.23 민주화운동과 검은 10년 같은 현대사를 다룬 영화들이 잇따라 나오면서 루이나 영화의 새 흐름을 이끌었다. 해마다 가을에는 루이나 최고 권위의 영화상인 골든 오로라 시상식이 롱비치에서 열린다.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중심은 벨포르여서, 루이나 영화계는 흔히 '상업 영화는 롱비치, 독립영화는 벨포르'로 나뉜다고 말한다.
8.2. 상권 [편집]
롱비치의 대표 상권은 다운타운의 구도심 상점가와 오로라 힐스의 영화관 거리, 선라이즈 비치의 해변 상권이다. 롱비치 광장의 야시장은 해산물과 이민자 음식으로 유명하다.
9. 관광 [편집]
롱비치는 해변과 영화, 현대사를 함께 볼 수 있는 관광 도시다. 주요 관광지는 다음과 같다.
- 선라이즈 비치: 루이나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해변.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러 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 오로라 힐스 촬영소: 영화 세트와 촬영 현장을 둘러보는 관광 코스가 있다.
- 국립12·23민주묘지: 12.23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이 묻힌 묘지. 민주로에 있으며, 12·23민중항쟁추모탑이 서 있다.
- 다운타운 구도심: 19세기 석조 건물이 남아 있는 거리.
- 롱비치 해양 박물관: 항구도시 롱비치의 역사와 바다 생물을 소개하는 박물관.
- 롱비치 광장 야시장: 해산물과 각국 음식을 파는 야시장.
10. 도시 행정 [편집]
롱비치 시장과 시의원 41명은 주민 직선으로 뽑힌다. 루이나의 시의회는 대부분 양원제지만, 롱비치 시의회는 루이나에서 유일한 단원제 시의회다. 시 아래에는 8개 구가 있다.
10.1. 하수 처리 [편집]
롱비치는 해안을 따라 길게 뻗은 도시여서, 하수처리장도 해안을 따라 여러 곳에 나뉘어 있다. 김·파래 양식장이 있는 솔트베이 앞바다의 수질을 지키기 위해, 처리한 물을 먼바다로 보내는 해양 방류관을 따로 두고 있다.
10.2. 사법 [편집]
롱비치에는 롱비치 지방법원과 해사 사건을 전담하는 롱비치 해사법원이 있다. 항만과 해운 관련 분쟁이 많아 해사법원은 루이나 해사 사건의 상당수를 처리한다.
10.3. 공공기관 [편집]
10.3.1. 본부 및 사업소 [편집]
- 롱비치 교육청
- 롱비치 소방재난본부
- 롱비치 상수도사업본부
- 롱비치 항만관리사업소
10.3.2. 공사 및 출연 기관 [편집]
- 롱비치 도심 개발공사
- 롱비치 교통공사
- 롱비치 주택공사
- 롱비치 영상위원회
10.3.3. 그 외 관련 기관 [편집]
- 롱비치 시립병원
- 롱비치 시립 제1도서관
11. 생활·문화 [편집]
11.1. 주거 환경 [편집]
롱비치는 루이나 대도시 가운데 단독주택의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다. 해안을 따라 단독주택 지구가 길게 이어지며, 구도심에는 19세기 석조 건물을 고친 집이 많다. 아파트 단지는 노동자 주거지인 노스게이트와 하버에 주로 모여 있다. 벨뷰와 선라이즈 비치의 해안 주택은 값이 비싸지만, 루이나 전체로 보면 롱비치의 주거비는 벨포르보다 훨씬 낮은 편이다.
11.2. 교육 [편집]
11.2.1. 초·중·고등학교 [편집]
롱비치의 공립학교는 롱비치 교육청이 운영한다. 그래이 시장 시절 루이나 최초로 고등학교 무상급식을 도입했으며, 이 정책은 이후 벨포르 수도권에서도 벤치마킹되었다.
11.2.2. 대학 [편집]
롱비치에는 롱비치 시각예술대학과 롱비치 응용예술대학, 롱비치 기계기술대학, 롱비치 생활과학대학이 있다. 영화 산업의 도시답게 롱비치 시각예술대학과 응용예술대학은 영화 촬영과 미술, 특수효과 분야의 인재를 많이 길러 내며, 롱비치 기계기술대학은 조선과 항만 기계 분야에서 손꼽힌다.
11.3. 의료기관 [편집]
롱비치의 대표 공공병원은 구도심에 있는 롱비치 시립병원이다. 루스탈지아 그래이 대통령과 그 형제들이 모두 이 병원에서 태어났다.
11.4. 치안 [편집]
롱비치의 치안은 1941년 창설된 롱비치 경찰국이 맡는다. 항만과 공항, 고속도로는 국토안보부 소속 경찰국들이 관할한다. 검은 10년 시기에는 사보이아 조직과 올덴버그 마피아의 항만 전쟁으로 항구 일대의 치안이 극도로 나빴으나, 1980년대 이후 조직범죄 소탕으로 크게 나아졌다. 다만 2022년 롱비치 광장 야시장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이민자를 겨냥한 혐오 범죄가 새로운 치안 과제로 떠올랐다.
11.5. 언어 [편집]
롱비치 시민은 주로 루이나어를 쓴다. 다만 항구와 영화 산업 때문에 영어를 쓰는 사람이 많아, 루이나에서 영어가 가장 널리 통하는 도시 가운데 하나다.
11.6. 스포츠 [편집]
롱비치의 대표 축구 클럽은 항만 노동자들이 세운 롱비치 하버 FC다. 긴 해안선 덕분에 서핑과 요트, 비치발리볼 같은 해양 스포츠가 활발하다.
11.7. 음식 [편집]
롱비치의 음식은 바다에서 나온다. 솔트베이에서 기르는 김과 파래를 넣은 요리, 갓 잡은 생선 구이와 조개 요리가 유명하다. 롱비치 광장 야시장에서는 이민자들이 들여온 각국 음식도 맛볼 수 있다.
12. 정치 [편집]
롱비치는 사회민주당이 우세한 도시지만, 루이나의 다른 대도시보다 민주공화당의 지지도 탄탄한 편이다. 항만 노동자가 많은 노스게이트와 하버는 사회민주당의, 해안 고급 주택가인 벨뷰는 민주공화당의 강세 지역이다. 현재 시의회 41석 가운데 26석, 하원 32석 가운데 20석, 상원 8석 가운데 5석을 사회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다.
2008년부터 8년 동안은 민주공화당 시장이 연임했다. 이 시기 항만 산업의 정체와 함께 부패와 청년 실업이 쌓였고, 2016년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나선 루스탈지아 그래이가 단일토론회에서 현직 시장의 부동산 비리 의혹을 폭로하며 60.2%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그래이는 루이나 역사상 최연소 광역단체장이자 첫 여성 롱비치 시장이었다. 재임 중 청년 정착 예산제와 공공수도 기본료 무료화 시범사업, 투명시정 시민회의, 고등학교 무상급식을 도입했으며, 이후 사회민주당에 입당해 2020년 당 대표가 되었다. 2019년 재선된 그래이는 2021년 대통령 선거에 나서며 시장직에서 물러났고, 같은 해 사회민주당의 클레어 D. 뒤프레가 뒤를 이었다.
롱비치는 고등학생 루이나 사회민주당이 2003년 창립된 곳이기도 하며, 이 조직의 본부도 롱비치 하버뷰 로에 있다.
13. 군사 [편집]
롱비치는 루이나 해군의 동쪽 거점이다. 포인트 레이의 롱비치 해군기지에는 동태평양과 남아메리카 방면을 맡는 해군 제4함대의 본부가 있으며, 롱비치 해군지원기지와 남미 전개지원단이 함대를 뒷받침한다. 루이나 해군의 핵추진 순양함 가운데 한 척은 도시의 이름을 따 롱비치급으로 불린다.
해군기지는 롱비치 경제의 큰 축이기도 하다. 기지와 조선소, 정비 업체에서 일하는 군무원과 민간인이 많아, 해군의 예산 변화가 곧바로 지역 경제에 영향을 준다.
해군기지는 롱비치 경제의 큰 축이기도 하다. 기지와 조선소, 정비 업체에서 일하는 군무원과 민간인이 많아, 해군의 예산 변화가 곧바로 지역 경제에 영향을 준다.
14. 여담 [편집]
- 루스탈지아 그래이 대통령은 1992년 롱비치에서 태어나 2006년 가족과 함께 벨포르로 이주할 때까지 롱비치에서 자랐다. 아버지 에드워드 그래이는 롱비치 도심 개발공사의 토목 기술자였다.
- 그래이 대통령의 오빠 베네딕트 그래이는 가족이 벨포르로 이주한 뒤에도 롱비치에 남아 롱비치 시립고등학교를 졸업했다.
- 새해 첫날 선라이즈 비치의 해돋이는 해마다 전국에 생중계된다.
15. 각종 매체의 롱비치 [편집]
- 루이나 상업 영화의 상당수가 롱비치의 거리와 해변에서 촬영되어, 롱비치는 루이나 영화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도시다.
- 12.23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가 1990년대 이후 꾸준히 만들어졌으며, 이 가운데 여러 편이 골든 오로라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 영화인들의 꿈과 좌절을 그린 이야기에서 롱비치의 오로라 힐스는 단골 배경이다.
16. 자매결연 지역 및 우호 교류 지역 [편집]
16.1. 자매결연 지역 [편집]
지역 | 국가 | 체결 연도 |
리옹 | 프랑스 | 1964년 |
요코하마 | 일본 | 1971년 |
발파라이소 | 칠레 | 1988년 |
16.2. 우호 교류 지역 [편집]
지역 | 국가 | 체결 연도 |
칸 | 프랑스 | 1996년 |
시드니 | 오스트레일리아 | 2005년 |
